[기고] 프랑스 공교육 속 ‘한국어 국제섹션’, 왜 고등학교까지 이어져야 할까?

[프랑스 11개 한인 단체 공동 기고문]

프랑스 공교육 속 ‘한국어 국제섹션’, 왜 고등학교까지 이어져야 할까?

— 유럽의 중심 프랑스에 대한민국 교육 영토를 세우는 외교 전략


프랑스에 살면서 우리 아이들이 모국어와 한국 문화를 잊지 않고 이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은 모두 같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말마다 한글학교에 보내고, 가정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며 정체성을 지켜주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혹시 프랑스 공립학교 안에 한국어로 문학과 수학 등을 정규 교육과정으로 배우는 ‘한국어 국제섹션(BFI)’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현재 파리 한국교육원을 중심으로 프랑스 고등학교에 한국어 국제섹션을 개설하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우리 한인사회에는 이 제도의 눈부신 가치가 충분히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아, 왜 이 교육과정이 프랑스 한인사회에도 중요한지, 왜 학생과 학부모들만의 이슈가 아닌지 그 간절함을 함께하고자 이 글을 전합니다.



“외국어 하나 더 배우는 게 아닙니다”

‘한국어 국제섹션’이라는 이름만 들으면 주말 한글학교나 프랑스 학교의 일반적인 ‘제2 외국어’ 수업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와 다르게 국제섹션은 다른 국가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프랑스만의 독특한 교육과정입니다.

흔히 아는 한국어 교육 과정들과 비교하자면, ‘한글학교’는 우리 아이들이 한국어와 문화를 배우고 정체성을 이어가는 소중한 공간이고, 일반 중/고교 과정의 ‘제2 외국어 수업인 LVB·LVC’는 한국어 ‘언어 학습 과정’입니다. 

반면 이들과 다른 ‘한국어 국제섹션’은 한국어는 기본으로 문학, 수학, 역사 등 교과목을 한국어로 심화 학습하는 ‘프랑스 공교육의 국제교육 과정’입니다. 쉽게 말해, 한국어를 배우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한국어로 학문과 문화를 함께 공부하는 것입니다.


  • 한글학교: 100% 민간 주도. 차세대의 정체성 함양 및 한국 문화 보급 활동을 하는 소중한 공간. 공교육 밖에 존재하며 대입 시험 등에 미반영.
  • 일반 제2 외국어 (LVB/LVC): 프랑스 교육부 주관. 기초 회화를 배우는 일반 언어 학습. 대입 반영 비중이 적어 고교 진학 후 학업 부담으로 포기 다수.
  • 국제 섹션 (한국어 BFI): 한국-프랑스 양국 협의 주관. 한국어로 문학/수학 등 토론하고, 한국어로 대입 시험(바칼로레아)을 치르며 가산점을 부과하는 정규 학술 과정.



“그래서 대한민국에는 무엇이 좋을까요?”

이 제도의 의미는 우리 아이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프랑스 학교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더 큰 가능성은 프랑스 학생들이 학창 시절부터 한국어로 한국 관련 학문을 깊이있게 접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그렇게 이 학생들이 성장해 프랑스 사회의 다양한 분야로 진출한다면, 한국을 이해하고 한국과 교류할 수 있는 인적 네트워크가 형성됩니다. 한국을 한 번쯤 들어본 나라가 아니라, 학창 시절부터 배우고 이해해 온 나라로 기억하는 사람을 늘리는 것. 이것이 바로 한국어 국제섹션이 지닌 장기적인 교육·문화 외교의 의미입니다. 

특히 단순 언어 학습이 아닌, 그 ‘언어로 진행하는 교육’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는 사람을 꾸준히 길러내는 일은 한국-프랑스 관계를 더욱 튼튼하게 만드는 기반이 될 수 있습니다. 이들이 성장해 프랑스 사회 각계로 진출한다면, 몇 년 후 프랑스 사회 중심부에 대체 불가능한 강력한 외교 우군을 만드는 일입니다. 이렇듯 대한민국의 장기적인 국익과 아이들의 교육 기회를 함께 생각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한국어 국제섹션의 중요한 가치입니다.


“건물 한 평 안 지어도 되는 '가성비' 외교 전략”

해외에서 한국어 교육을 확대하려면 새로운 학교나 교육기관을 설립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다만, 해외에 한국어 교육 기관이나 한국학교를 새로 지으려면 땅을 사고 건물을 올리는 데 수백억 원, 매년 운영비로 수십억 원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어 국제섹션은 프랑스의 기존 공립학교와 교육체계를 활용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프랑스의 한국어 섹션은 학교와 교실, 기본적인 교육 운영은 프랑스 교육체계 안에서 이루어지고, 한국은 양국 간 협의에 따라 교사와 교육자료, 교육과정 등을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 합니다. 건물, 교실, 기본 학교 운영비 전액을 프랑스 정부가 부담합니다. 우리 정부는 전문 교사 지원과 교육 프로그램비 등 최소한의 마중물 예산만 거들면 됩니다. 

새로운 시설을 만드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마련된 교육의 기반을 활용해 한국의 언어와 문화를 더 깊이 뿌리내리게 하는 것. 이런 점에서 한국어 국제섹션은 적은 규모의 지원으로도 장기적인 교육·외교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좋은 ‘교육협력 모델’이 됩니다. 때문에 프랑스의 정규 학교 인프라를 활용해 ‘대한민국 교육 영토’를 넓힐 수 있는 최고의 가성비 투자인 것입니다.



“다른 나라는 다 하는데, 왜 우리만 '반쪽짜리'로 멈춰있을까요?”

현재 프랑스 국제섹션에 채택된 18개 언어 중 비유럽어는 아랍어, 중국어, 일본어, 한국어 단 4개뿐입니다. 그리고 중국어와 일본어 섹션은 프랑스 전역에 여러 중·고등학교에서 활발히 운영되고 있지만, 한국어는 현재 중학교 과정에 머물러 있습니다. 

한불수교 130주년을 계기로 10년 전 벌써 도입된 이래로 오늘날까지 전국에 단 2곳, 그것도 '중학교 과정'에만 머물러 있는 반쪽짜리 상태입니다. 18개 언어 중 ‘고등학교 과정이 없는 언어’는 안타깝게도 한국어가 유일합니다. 중학교에서 한국어 국제섹션을 공부한 학생들이 고등학교에서도 같은 교육의 흐름을 이어갈 수 있는 과정이 끊어져 있는 것입니다. 중학교에서 시작한 배움이 고등학교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교육의 연속성을 마련하는 것은 시급한 과제입니다.

이미 ‘존재하는 교육 기반을 고등학교까지 연결하는 일’은 새로운 사업을 ‘처음부터 만드는 것’과는 확연하게 다릅니다. 한국어를 배우려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도 커지는 상황에서 기존의 교육 기반을 살려 그 가치를 더 크게 키우는 일입니다. 한국에 관심있는 아이들의 배움이 중간에 끊기지 않도록, ‘교육의 사다리’를 완성해 주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프랑스 한인사회가 함께 키워야 할 교육·문화 자산”

한국어 국제섹션은 대한민국에는 프랑스 사회와의 장기적인 인적·문화적 연결을 넓힐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프랑스의 공교육 인프라를 통해 우리 아이들은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이어갈 기회를 얻고, 프랑스의 학생들은 한국어로 우리 문학과 학문을 배우며 한국을 깊이 이해하는 인재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이들이 훗날 한국과 프랑스를 잇는 가교가 된다면, 교육을 통해 양국의 교류 기반을 넓히는 장기적인 효과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여타의 해외 정책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작은 예산으로 거둘 수 있는 성과입니다. 하지만 양국의 외교적 합의가 필요한 이 정책이 양국 정부의 아쉬운 의지 때문에 미완의 상태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현재 프랑스 한국교육원을 비롯하여 여러 한인 단체와 관계자들이 프랑스 고등학교의 한국어 섹션 유치를 위해 노력 중입니다. 하지만 이분들만의 수고로는 우리의 목소리가 한국 정부 관계자에게 닿기에 아직 부족합니다. 우리 정부와 프랑스 교육 당국의 결단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 프랑스 한인사회의 이해와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절실합니다. 학생과 학부모 뿐만 아니라, 동포로서 재외국민으로서 프랑스 한인사회 구성원 전체가 이 제도의 가치를 함께 이해하며, 그 배움이 한국과 프랑스의 미래를 잇는 길로 이어질 수 있도록 이해와 관심을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이 기고문은 아래의 단체에서 공동 참여했습니다. (가나다 순)

  • 그르노블 한인회
  • 꾸르브부아 한국어 국제섹션 학부모협회(ASICC)
  • 뚜르 한인회
  • 릴 한인회
  • 몽펠리에 한인회
  • 보르도 한인회
  • 부르타뉴 한인회
  • 스트라스부르 한인회
  • 클레르몽페랑 한인회
  • 툴루즈 한인회
  • 프로방스 한인회